챔피언 벨트에 입맞춤하는 이왕표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프로레슬링 스타 이왕표(64)가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설인 ‘박치기왕’ 김일의 제자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던 그는 ‘영원한 챔피언’으로 불리며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이왕표는 1980년대 프로야구, 프로축구의 등장으로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크게 하락했을 때도 묵묵히 프로레슬링을 지켰다. 2008년에는 유명 종합격투기 선수인 밥 샵과의 경기로 화제를 모았고 이 경기 승리로 이왕표는 울트라 FC 초대챔피언에 올랐다.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밀며 레슬링 알리기에 나섰던 이왕표는 2013년 8월 담도암 수술을 받고 투병중이었다. 건강을 많이 회복했었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프로레슬링의 흥망성쇠 묵묵히 함께한 인생
2015년 5월 25일 공식 은퇴, 40여 년간 1600여 회 경기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4일 프로레슬링 스타 고 이왕표씨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프로레슬러 이왕표님 별세. 그동안 꿈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역도산, 김일, 그리고 이왕표님까지… 또 한 시대가 갑니다”라고 소회했다.

과분한 사랑 받았다던 그
은퇴식서 눈물 글썽여


이왕표는 지난 2015년 5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갖고 링을 떠났다.

당시 이왕표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 앞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 드렸어야 했는데, 아직 투병 중이라…”며 링을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주특기인 ‘드래곤킥’을 팬들 앞에 선보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은퇴식과 함께 치러진 ‘은퇴기념 포에버 챔피언 2015 WWA’ 대회에서 그는 직접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도 삼각팬티가 아닌 어색한 정장차림으로 링에 오른 것에 대해 죄송해 하는 그의 모습은 천상 프로레슬러였다.

그는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저한테 주신 사랑을 제 후배들에게도 보내주신다면 한국 프로레슬링의 앞날은 영원할 것”이라며 한국 레슬링의 미래를 당부했다.

1970년대 ‘박치기왕’ 김일의 체육관 1기생으로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이왕표는 신인시절 20연패를 기록하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프로레슬링 한 길만을 고집하며 40여 년간 무려 1600여 회의 경기를 치렀다.

2000년 한국프로레슬링연맹이 주축이 된 WWA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김일의 은퇴 기념 경기에서 타이틀을 거머쥐며 한국 프로레슬링의 적자임을 인정받았다.

그는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까지 맡으며 프로레슬링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2000년대 들어 종합격투기 인기가 급부상하면서 국내 프로레슬링 시장이 침체된 데 따른 비난도 그의 몫이었다.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2008년과 2009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스무살이나 어린 밥 샵과 종합격투기 규칙으로 대결을 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온전히 프로레슬링 인기를 되살려보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지만 '가짜 대결' 논란을 불러오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한동안 대중에게서 멀어졌던 그는 2013년 담도암 판정을 받고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후 건강을 회복하고 건강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담도암 수술 이후 식이요법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앞치마 두른 세계 챔피언’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담도암이 재발해 영면에 들었다.

영정 속 이왕표 <뉴시스>
청소년들 사랑 컸다
끝까지 레슬링 활성화 걱정


일요서울은 지난 4월 10일 이왕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그는 “5년 되면 완쾌라고 하는데 8월이 5년이다. 암이라는 건 완쾌가 없다. 꾸준히 관리하고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이왕표는 생전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많이 나갔다. 인터뷰에서 이왕표에게 청소년들에게 애정을 쏟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덕에 내가 있는 게 아니냐. 이제는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한테 가면 나도 기를 받는다. 초롱초롱하게 보는 눈빛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소년들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김일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다”라며 ‘겸손할 것’ ‘배려할 것’을 말했다. 여기에 ‘용기를 가질 것’과 ‘꿈을 가질 것’ 두 가지를 추가했다. 겸손과 배려는 김일 선생이 생전에 후배들에게 특히 강조했던 말이란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이왕표는 “갈 길은 먼데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 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이왕표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왕표는 눈을 감을 때까지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 대한종합격투기협회 총재직을 맡고 있었다. 그만큼 레슬링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그는 남은 인생을 프로레슬링 활성화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프로레슬링에서 멀어진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후배를 육성하고 다양한 대회가 치러질 수 있도록 기본 인프라를 갖춰 놓는 방안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왕표는 미국과 일본에서 종합격투기와 레슬링이 성공한 이유를 동반 성장으로 봤다. 기본적으로 격투기와 레슬링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 이왕표는 “레슬링은 레슬링대로 키우고 격투기는 격투기대로 키워서 2002년에 준비했다 불발된 울트라FC를 부활시킨 후 레슬링 선수와 격투기 선수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계획은 이제 후배들과 그를 사랑했던 국민들의 몫이 됐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